[전병덕 칼럼] 곁가지의 비상

제8회 코스미안상 금상

[당선 소감] 

 

어쩌면 징크스(?)

 

무심코 이메일 제목을 훑는다. “코스미안상 수상”이라는 일곱 글자가 대문짝처럼 다가온다. 묘한 흥분과 기대감에 부풀어 메일을 연 순간, 살짝 맥이 풀리면서 어깨가 내려앉는다. 그렇게 “금상”이라는 단어에 꽂힌 시선은 한동안 제자리에서 떠날 줄 모른다. 은연중 “대상”이라는 글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모양이다.

 

지천명(知天命) 넘어 입문한 문학인의 세계다. 열정은 2005년 등단 이후 몇 년을 주기로 서너 번에 걸친 공모전 수상으로 이어진다. 나름 만족하고 있었던 결과물이었는데 짚어 보자면 모두가 최우수상 아니면 금상이었다. 언제나 2등이었던 셈이다. 하여 무의식적으로 대상에 대한 갈망이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한 줄기 바람이 이마를 스쳐 간다. 그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가슴 한편이 훈훈해져 오면서 잔잔한 기쁨과 감사의 진한 감동이 출렁거린다. 그렇지, 50여 년 전 장수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며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연세가 지금 내 나이다. 일흔 넘어 이처럼 글을 쓰고 더욱이 커다란 상까지 받는다는 건 참으로 복되고 고마운 일상이지 않은가.

 

심사를 해주신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또한 코스미안상 주체이신 이태상(李泰相) 회장님의 우주적 시각에도 감사를 드리면서, 종심(從心) 넘도록 씩씩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의 대한민국에도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번쯤“대상”을 수상하고 싶은 마음도 잊지는 않겠다.

 

 

[제8회 코스미안상 금상] 곁가지의 비상

 

“나는 주류인가, 비주류인가.” 어느 시점에서 문득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 보곤 했다. 대답은 언제나 ‘비주류다’였다. 4·19 혁명이 일어나던 해 국민학교에 입학한 나는 졸업식 때, 교육감 상(賞)으로 두꺼운 국어사전까지 받는 등 줄곧 성적이 우수했다. 그럼에도 6년 내내 반장이나 부반장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그때는 대개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에서 선생님이 지정을 했는데 아마도 적극성이나 붙임성 등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중학교 때도 거지반 마찬가지였다. 자의 반 타의 반 회장 선거에 출마해 보기는 했으나, 그냥 며칠 동안 선거 유세를 한답시고 ― 서너 명이 어울려 ― 이 동네 저 동네 찾아다니며 유숙한 게 전부였다.

 

선반(旋盤) 깎는 기계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일탈 행위가 심심찮게 이어진 주 요인이 된다. 2학년이 되고 진학반으로 편성되면서 안정을 되찾았는데, 당시 읽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데미안(Demian)은 탈태(奪胎)의 개안(開眼)을 만끽하는 전무후무한 각성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다.”라는 구절을 달성공원 벤치나 술좌석 등에서 낭송하면, 또래 고등학생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주눅이 들었고, 군대 시절 동료들은 속뜻을 헤아리며 기가 죽었다. 말하자면 일류 고등학교 학생들을 부러워하지 않았고, 대학교에 적(籍)을 두지 않았음에도 부대원들에게 ― 전체 반의반 정도가 대학생이었다 ― 하나도 움츠러들지 않았음이다. 헤르만 헤세의 신(神)을 향한 메시지는 그처럼 내게 비주류를 자각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손오공의 여의봉이자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마법이었던 셈이다.

 

대학교에 진학했으면 주류가 되었을까. 지방 K대학교의 불합격은 내게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합격자 발표 당일 함박눈이 내렸는데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 여동생까지 대동한 걸 보면 은연중 합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후기 시험 대상을 서울 H대학교로 정하자 아버지는 등록금을 거론하며 애초부터 선을 그으셨다. 그때 교육대학교 등을 추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 역시 그다지 관심 밖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시험 하루 전날 저녁, 그날도 함박눈이 내렸다. 영등포 구로공단에 취업한 같은 반 친구를 만나 밤늦도록 술을 마셨는데, 자취를 하던 두 친구는 휴일이어서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아침도 굶은 채 H대학교 고사장까지 어떻게 갔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 후 H대학교에서 보내온 등록 안내 통지문이 두어 번 마당에 굴러다니는 것으로 나의 대학교 도전은 끝이 났다.

 

사십 대 중후반의 일이다. 우연찮게 생긴 부부싸움의 여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열흘이 넘고 한 달이 되어 가도록 냉랭한 신경전만 흐를 뿐, 두 사람 사이는 사뭇 팽팽한 긴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심 끝에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무래도 말보다는 글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편지를 쓰면서 얼핏 떠올린 단편이 중학교 시절의 꿈이었다. ‘왜 이렇게 잊고 있었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왜 소설가를 꿈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편지 내용이 ‘시어버린 포도’였다. 이솝 우화에서 여우는 끝내 닿지 않는 포도송이 하나를 “저건 시어 버린 포도야.”라고 중얼거리며 떠났지만, 나는 검은 장막 속에서 부르는 만세는 아무도 알아주지도 들어주지도 않는다는 전제로 이미 썩어 버린 포도로 단정했다. 어떻든 그 편지글로 아내와 나는 화해를 했다. 이후 글쓰기가 새로운 사명으로 굳게 자리매김하는데 돌이켜보면 성급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아무튼 오십 대 초반, 들여쓰기와 단락 나누기 등만 겨우 체득해서 쓴 첫 수필이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입상을 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다. 학창 시절 내내 교실 뒤편 게시판 등에 이름을 올린 적은 거의 없었으나, 그럼에도 글쓰기를 자평하자면 자못 재능이 있다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시야가 좁았다. 제대 후 첫발을 디딘 곳이 소방이었다. 첫인상은 물론 인적, 물적 모든 면에서 70년대 초반 전방 군부대와 수준이 엇비슷했는데, 그때 알고 있던 공무원이 동사무소 직원과 순경, 선생이 전부였다. 제대할 무렵 동료들이 삼성과 현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나 귓등으로 흘렸을 뿐 동떨어진 세상의 한갓 신기루에 불과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지나면서 데미안의 메시지는 점차 생활 속에 묻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했고, 주어진 역량을 허비하고 있다는 자책감 속에 아버지가 알선한 첫 직장은 ― 가을날 단풍 물들듯이 ― 하루하루 천직이 되어 갔다.

 

몰입에 가까웠다. 여가가 있을 때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댔고 그때만큼은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항해 속에 빠져들어 세사(世事)의 번뇌를 잊곤 했다. 오십 대 중후반, 연이어 나름 성과들이 나타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주류인가, 비주류인가.” 다시금 묻는다. 비로소 곁가지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기웃거리지 않고, 혼자만의 색깔로 하고 싶은 일 당당히 하는, 주류의 대열에 합류한 스스로의 모습을 본다. 그랬다. 주류란 누구나가 선망하고 추구하는 어떤 위치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바로 그 지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그렇게 소년 시절 치기 어린 데미안의 메시지는 새롭고 꿋꿋하게, 청년의 의젓한 모습으로 눈부시게 화려한 부활을 한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TV ‘인간극장’을 본다. 화면 속 노부부의 천진하고 소박한 일상에 잔잔한 애잔함이 밀려온다. 굵게 주름진 얼굴이 마냥 정겨우면서도 이승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처연하고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면서 불현듯 그들의 연배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잠자리에 눕자 상념이 깊어진다. 바람결처럼 여름밤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어렸을 적부터 좋아한 소쩍새 울음소리는 구슬프면서도 무언가 가슴을 다독여 주는 아늑함이 묻어나는 정취가 있다. 그래, 아직은 검푸른 여름밤 숲속이 토해 내는 숨결을 더 들어봐야지. 살아 있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결코 곁가지의 비상(飛上)을 멈추지는 말아야지. 아직 여기,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는 투쟁 중이다.

 

작성 2026.10.15 09:26 수정 2026.10.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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