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코음악학원] 조아영 대표 |
“콩쿠르 준비하면서 체르니 진도가 멈췄어요. 이래도 괜찮은 건가요?”
“아이 친구는 벌써 바이엘이 끝났다는데, 우리 아이는 진도가 자꾸 느려지는 것 같아요. 연주회와 콩쿠르를 괜히 나간 걸까요?”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내 대답은 한결 같이 확고하다. “어머니, 진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곡을 깊이 배우는 그 시간이 아이가 가장 잘 크고 있는 시간입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학부모가 가장 쉽게 아이의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는 진도이다. 바이엘 몇 번을 치고 있는지, 체르니 몇 번을 마쳤는지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 페이지를 넘겼느냐에 불과하다. 영상을 틀어놓으면 내가 보지 않아도 재생 시간은 흘러가듯이, 단순히 학원을 오래 다녀서 진도를 많이 나갔을 수도 있다. 혹은 아이가 한 곡을 오래 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기에 그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지 않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빠르게 악보만 읽고 넘어가는 방식으로는 교재 안에 담긴 테크닉(스케일, 아르페지오, 옥타브, 트릴 등)이 훈련되지 않는다. 반복 연습을 통해 그 기술들을 온전히 소화했다면 진도는 실력의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진도를 나간 것’과 ‘실력이 생긴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콩쿠르와 연주회 준비 기간은 왜 아이를 빠르게 성장시키는가. 평소 레슨 방식과 콩쿠르 준비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평소에는 새로운 곡을 배우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콩쿠르 준비는 한 곡을 오랜 기간 깊이 파고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테크닉, 음색, 페달링, 호흡, 음악적 표현을 한꺼번에 훈련한다. 맹목적으로 연습량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음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높이는 영양가 있는 연습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현장에서 보면 콩쿠르와 연주회를 성실히 준비한 아이들은 이 기간에 실력이 두세 단계씩 올라간다. 행사를 끝낸 이후 갑자기 진도를 나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실력 자체가 늘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진도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빠르게 자라고 있는 시간이다.
![]() ▲ [포코음악학원] 연주회 현장 |
무대가 아이에게 주는 것은 실력의 성장만이 아니다. 무대 위는 외롭다. 선생님도, 부모도, 친구도 도와줄 수 없다. 오직 자신을 믿고 첫 음을 내야만 한다. 틀리고, 멈추고, 다시 해보려 했던 수개월의 시간이 단 한 번의 연주로 응축되는 그 순간, 아이는 처음으로 스스로 해냈다는 것을 몸으로 안다. 이 경험이 아이의 자존감을 바꾼다. 콩쿠르와 연주회는 잘된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걸어온 과정에 대한 기록이며, 아이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작은 축하다.
물론 콩쿠르에서 상을 받으면 기쁘다. 하지만 상은 보너스일 뿐이다. 아이들을 오래 가르치며 확인한 것은, 무대에 서본 아이와 서보지 않은 아이의 차이가 실력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대를 겪은 아이는 어려운 곡을 만났을 때 도망가지 않는다. 한 번 끝까지 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피아노 앞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의 진도가 멈춘 것처럼 보이는 계절이 오더라도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 시간에 아이는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끝까지 해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언젠가 아이가 피아노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 경험만은 남는다. 우리가 아이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진짜 이유도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