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당시 가장 큰 변화는 신분제 철폐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민초들은 환호보다는, 단발령에 대해 반발이 더 컸다고 합니다. 억눌린 삶에 대한 회복보다 부모님에게 물려 받은 신체를 훼손한다는 거부감이 더 컸던 거 같습니다.
단발은 이제 깔끔한 남성의 기준이요. 매장은 화장으로 삼년상은 삼일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사조차도 간소해지거나 아예 지내지 않는 가정도 많습니다. 100여 년 전 조상들이 까무러칠 정도의 변화지만, 세상은 아랑곳없이 흐릅니다.
돌잔치도 가족끼리 치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결혼식 역시 스몰웨딩이라는 이름으로 작아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판박이 장례를 거부한 사람들’이라는 영상을 보눈데, 이제는 장례의 차례인가 싶었습니다. 제 친구 중에 벌써부터 부모님 장례식을 안하기로 공표한 녀석도 있습니다. 꼭 챙겨야 하는 친척과 지인외에는 부르지 않겠다는거죠. 본인도 불참하구요. 되려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경조사. 특히 조사에 참여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편입니다. 부고 소식을 접하면 대부분 참석했던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고인 영정사진을 보면 생면부지의 고인인 경우가 태반이긴 했습니다.
지인을 위로하고 싶다는 진심 뒤편에는, 슬그머니 '품앗이'의 계산도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찾아갔으니, 언젠가 내 일에도 찾아오겠지' 하는 무의식적인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결혼식때 식장에 입장하기 바로 직전에 축의금을 제 옷에 넣어주며 축하해주던 선생님의 손길. 어머니 장례식 때, 빈소에서 저보다 더 크게 울어주며 안아주었던 지인의 위로가 아직도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제 입에서 “아버지 장례식장엔 안 오셔도 됩니다.” 라고 말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정할 순 없으나, 장례식의 모습도 분명 달라지겠죠.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형식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이라 여깁니다.
경조사에 참석할 때 나중을 생각한 품앗이 차원은 넘어서야겠죠. 화환이나 조화에 수, 식장을 채운 손님의 수에 연연해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축하해주는 자리. 마음을 다해 슬퍼해주고 위로해주는 차원의 자리. 그런 가치관과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경조사의 미래는 더 작아지는 대신, 더욱 진심에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참고영상
'판박이 장례'를 거부한 사람들..장례 2차 혁명
https://www.youtube.com/watch?v=bDEoS_DFlN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