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카시와 철학』에서 이상옥은 디카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메를로 퐁티를 전면 호출한다. 이 시도는 “디카시와 모리스 메를로 퐁티”(70쪽)라는 제목에서 이미 예고한다. 내용을 면밀히 읽어 보면, 이상옥이 주장하는 것은 메를로 퐁티 철학의 해석이나 적용이 아닌 그의 이름과 몇 개의 핵심 어휘를 차용한 개념적 장식에 불과하다. 철학은 작동하지 않고, 권위만 남는다.
이상옥은 메를로 퐁티를 “철학적으로 그는 몸의 철학자다”(71쪽)라고 규정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이 진술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는 메를로 퐁티의 몸 개념을 “몸이 먼저 세계의 울림을 받아들이는 사건”(71쪽)으로 요약한다. 이 요약은 메를로 퐁티의 몸을 인식론적 장치가 아닌 감각적 반응 기관으로 축소한다. 메를로 퐁티에게서 몸은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해체하기 위해 설정된 철저히 이론적인 개념이다. 몸은 감각의 집합이 아니다. 세계가 의미로 현상하는 조건이다. 그런데 이상옥의 설명에서 몸은 ‘먼저 반응하는 것’, ‘울림을 받는 것’으로만 남는다. 이때 몸은 이미 철학적 개념이 아닌 창작 감수성의 은유로 변질한다.
이상옥은 이어 “메를로 퐁티에게 세계는 객체가 아니라 지각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살’이다”(72쪽)라고 말한다. 여기서 ‘살(flesh)’이라는 핵심 개념을 호출한다. 이 개념은 그 즉시 “시인이 세계의 살과 자신의 교차하는 지점”(72쪽)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된다. 메를로 퐁티의 ‘살’은 세계와 주체가 서로를 관통하며 얽혀 있는 존재론적 매질이다. 그것은 교감의 은유가 아니다. 이상옥의 서술에서 ‘살’은 세계와 시인이 만나는 감각적 순간 정도로 축소한다. 존재론을 미학적 분위기로 치환한다.
이러한 축소는 ‘지각’ 개념에서도 반복한다. 이상옥은 “지각은 곧 세계의 의미를 체험하는 방식”(76쪽)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메를로 퐁티의 지각 개념이 지닌 이론적 긴장은 제거해 놓았다. 메를로 퐁티에게 지각은 세계가 언어 이전에 이미 구조화되어 주어지는 방식에 대한 분석이다. 이상옥의 텍스트에서 지각은 ‘느끼는 것’, ‘체험하는 것’으로 환원한다. 이때 지각은 더는 인식론의 문제가 아닌 감각의 문제로만 남는다.
이상옥은 이러한 개념들을 연결해 “메를로 퐁티적 디카시는 몸을 통한 감각적 지각이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로 외화되는 예술”(72쪽)이라고 결론짓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증의 붕괴가 발생한다. 사진 기호에서 문자 기호로의 이행은 어떤 이론적 경로를 통해 가능한가. 메를로 퐁티는 사진 매체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적이 없다. 기호의 전이에 대한 설명 역시 제공하지 않는다. 이상옥은 아무런 매개 없이 “날시가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로 결합된다”(72쪽)고 단정한다. 이것은 추론이 아니라 선언이다.
더 나아가 이상옥은 날시를 “말 이전의 지각적 진동”(72쪽)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의미 이전의 의미’라는 메를로 퐁티의 표현을 암묵적으로 차용한다. 메를로 퐁티의 ‘의미 이전의 의미’는 결코 모호한 감각이나 신비로운 울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가 성립하기 이전에 이미 작동하는 지각의 구조를 가리킨다. 이상옥은 이 개념을 말 이전의 “지각적 떨림”(72쪽)으로 바꾸어 놓는다. 구조는 사라지고 정서만 남는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반복한다. 시인은 “몸으로 그 침묵을 받아들이고, 언어로 다시 건네며, 독자로 하여금 나무 상자를 바라보게 한다.”(75쪽)라는 문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문장은 철학적 명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개념도 증명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은 설명이 아닌 인상이다. 메를로 퐁티의 철학이 요구하는 것은 인상에 대한 해명이 아니다. 그 인상이 어떻게 가능해지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이상옥의 텍스트에는 분석이 없다.
결국, 이 장에서 수행되는 작업은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먼저 메를로 퐁티의 이름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몸’, ‘지각’, ‘살’과 같은 핵심 용어를 나열한다. 마지막에 “그러므로 디카시는 감각철학적 예술이다”(76쪽)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철학적 논증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다. 이론을 적용하지 않고, 권위만 소비한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단순한 오독이 아니다. 이는 이론 사칭이다. 철학자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전략이다.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디카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의 철학을 정면으로 읽을수록, 이러한 단순화와 비약은 성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디카시와 철학』의 메를로 퐁티에 관한 주장은 철학적 해석의 실패를 넘어, 철학을 장식물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논증을 생략하며, 결론만 남는다. 철학을 사유하지 않았고, 디카시를 증명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이론의 이름표뿐이다. 이것은 학문이 아니다. 해석이 아닌 이론 사칭이다.
지금까지 메를로 퐁티의 지각 현상학을 감각 미학으로 단순화하는 과정을 밝혔다. 신체는 세계와의 관계 구조이지 감각의 집합이 아니다. 디카시 담론은 이 구조적 사유를 제거한다. 그 결과 현상학을 장식적 언어로 소비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