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일 작가 인터뷰: 한국 아방가르드의 숨겨진 기록, 사진전 《한국행위예술 사발통문》

한국행위예술의 산 증인

20여년간 현장에서 한국행위예술의 역사를 기록하다.

부산의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아트스페이스 머지)에서 한국 전위예술의 역사와 생동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주류 상업 미술계의 조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언어를 고집해 온 행위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의 찰나의 순간을 오랜 시간 카메라 담아온 권영일 작가의 개인전 《한국행위예술 사발통문 沙鉢通文》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 아방가르드 예술이 지닌 근원적 가치와 전위 정신을 재조명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져 버리기 쉬운 행위예술(Performance Art)의 생생한 현장을 기록으로 살려낸 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 있어 '아카이브'는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국 행위예술의 현장을 치열하게 기록해 온 권영일 작가의 개인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기록해 온 행위예술의 역사와 미학적 작품 세계를 조망해 본다.

전시 개요
전시명: 《한국행위예술 사발통문 沙鉢通文》
작가: 권영일
기간: 2026년 10월 6일(화) ~ 10월 19일(월)
장소: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
특별 퍼포먼스: 2026년 10월 8일(목) 오후 4시 — 심홍재 작가 퍼포먼스
 


[작가 인터뷰] 사진가 권영일이 말하는 "행위예술, 그리고 사발통문"
전시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곡성에서 사진가로 살아가며 오랜 시간 한국 행위예술의 현장을 지켜봐 온 권영일 작가님과의 서면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고, 주로 어디에서 활동하고 계신지도 함께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A. 나는 지금 전라남도 곡성에 살고 있으면서 대책 없이 늙어가는 사진가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사진은 먹고사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직업사진가로 살아오다가 2004년에 ‘퍼포먼스’라고 말하는 행위예술을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그 때는 전통적인 필름사진으로부터 디지털사진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였기도 했어요. 전문직업인으로서 돈 잘 버는 그때 정말 돈도 안되는 행위예술하는 이들은 내 눈에 ‘별난 사람들’이었고, 돈과 상관없이 작업하는 그 별난 사람들을 찍으면 내가 좀 더 독특한 사진가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게다가 많이 찍어도필름 값이 안 들어간다는 계산도 있었을걸요!


Q. 이번 전시의 제목을 《한국행위예술 사발통문》로 정하셨는데요. ‘사발통문’이라는 단어가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발통문’의 의미와 이번 전시가 어떤 점에서 연결되는지도 궁금합니다.

A. 사발통문은 누구에게나 가는 통지문이었습니다. 누가 어떤, 누가 누구에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없는 모두의 공지문이었고 지금의 언어로 말하면 가장 민주적인 알림이었죠. 나는 지금 그런 말을 한국행위예술가 또는 행위예술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알리는 행사라는 의미에서 그 말을 차용한 것입니다. 모두가 살기 어려운 시기이고 특히 예술가들의 삶은 더 어렵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부담 주는 일은 하기 싫고, 편하게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사발통문입니다.
 

Q. 2004년부터 행위예술을 접하게 되셨다고 하셨는데요. 처음 행위예술을 마주했을 당시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이후 지금까지 행위예술의 현장을 기록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A.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행위예술은 머리가 뛰어난 한국사람들, 그 중에서도 주관식 문제에 능통한, 말하자면 가장 창의적인 주권의식의 선봉이자 실행자였어요. 기발나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모두 못사는거야! 사회적언어로 말하면 돈못벌고 무능력인거야! 그런데 내 눈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그러다보니 착 들러붙은거죠, 아~~ 여긴 내가 같이 갈 길동무야!!

Q. 작가노트에서 “사진을 정리하는 것이, 내 삶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오랜 시간 촬영해 온 사진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이 있었나요?

A. 그동안은 그냥 별 생각이 없었죠. 난 그냥 그들이 노는 틈에 우연히 낑겨든 것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자료정리에 대한 언급을 받을 때 마다 내가 한 말은, 거 뭐 “별 볼일없다.” 라고 말했었거든요. 그런데 옆구리를 계속 찔렸어요, 성백 작가의 아트스페이스 머지가 계속 나를 촉발했죠! 너는 해야돼, 반드시 해야돼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보니 나중엔 없던 긍지도 생겼죠, 내가 참 중요한 키워드를 숨기고 있구나, 내가 열어야 그들이 더 숨을 쉬겠구나 하는 일종의 숨어있던 역할을 알게 된 거죠.
 

Q. 사진가로 참여하는 동시에 때로는 직접 퍼포먼스에 참여하기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바라본 퍼포먼스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A. 참으로 흉내내기 어려운 분야죠, 내가 여러 작가의 무대를 수없이 봤으니 그냥 “흉내만 내면 되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흉내만 낸 것은 퍼포먼스가 아니죠! 사색의 영역이 없는 흉내의 몸짓은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그래서 심오한 부분은 보조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흉내 내는 몸짓을 보여주는 것과 내면의 생각이 몸짓과 어울려 떨쳐내는 진심의 아우라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참 작가들은 느슨해진 자기를 늘 경계하지요! 나는 그것의 척도로서 가끔 보여줍니다, 얼마나 자주, 표정까지 클로즈업하면서 많은 ‘찰칵을 했냐?’가 그 척도가 아닐까요?
 

Q. 행위예술가들의 작업을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사진가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작가님에게 영향을 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감히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합니다. 그들과 아주 가까이 있기때문에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데는 집중하고, 그들이 즐기는 표현 방법이나 사유의 영역은 존중하고 있어요. 마치 상표등록이나 특허권처럼 묵시적인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Q. 사진은 한순간의 행위를 기록하지만, 퍼포먼스는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행위예술의 현장을 기록해오신 작가님께서는 사진으로 그 순간을 남기는 일이 남다르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 사진으로 행위예술을 기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A. 예술적 언어는 늘 반어법을 동반하죠, ‘작가의 행위가 ’바르게 살기‘라는 어떤 구호처럼 단편적으로 흐르면 나는 셔터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듭니다. 소극적인 평론인 셈이죠. 그래서 나는 내 사진찍는 행위와 결과물인 사진 모두가 작가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촉진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시간이 지난 후 사진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당시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이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특히 작가님이 꼭 함께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장면이나 사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자주 느끼는건데, 핸드폰 사진이 훨씬 멋있게 보일 때가 많아요. 그다음 얘기는 그냥 묻어둘께요!


Q.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통해 한국 행위예술의 어떤 모습이나 순간을 발견했으면 하시나요?

A. 역시 시간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귀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간의 축적은 역사이고, 역사는 되돌려 갈 수 있지 않아서 귀해지거든요. 여기 장면이 예술인이라서 귀한 게 아니고, 장면장면에서 느끼듯이 예술인도 똑같은 삶을 사는, 우리 같이 숨쉬는 사람이고 존중해야 하는 좀 독특한 직장인이라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찰나의 행위, 영원의 기록으로 남다
사진은 한순간을 정지시키지만, 퍼포먼스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린다. 권영일 작가는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는 행위 자체를 예술가들과의 유기적인 소통이자 '소극적인 평론'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권영일 작가의 프레임 속에서, 한국 행위예술가들이 발산했던 진심의 아우라와 뜨거운 생명력을 다시금 마주해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19일(월)까지 진행되며,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에서 한국 전위예술의 귀중한 순간들을 함께 나누기를 기대해 본다.

작성 2026.10.11 07:42 수정 2026.10.1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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