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연합뉴스]윤병운 칼럼니스트 = 채무자회생법상 회생절차는 법원이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해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돕는 법적 틀이다. 그러나 사업재편 방향, 채권자 협상, M&A 등 회생의 실질적 내용은 기존 경영자가 관리인이 되는 DIP 제도 아래에서 경영자가 직접 설계한다. 최근 ARS · pre-ARS ·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등 법원과 경영자의 협업을 강화하는 제도들이 확대되면서, 기업회생은 '법원의 절차'이자 '경영자의 전략'이라는 두 성격을 함께 갖게 됐다.
기업회생을 처음 접하는 경영자들에게 가장 흔한 오해가 있다.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이후의 모든 판단은 법원과 관리인의 몫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많은 경영자들이 회생신청 이후에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이자 한국M&A컨설팅협회 사무총장으로서 수많은 회생기업을 지켜보며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 기업회생은 법원의 절차이면서 동시에, 아니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경영자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법원이라는 틀 안에서 어떤 전략을 세우느냐에 따라 같은 절차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결론이다.
법이 말하는 회생절차의 목적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조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채무자에 대해 채권자, 주주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채무자 또는 그 사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는 것을 이 법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조 (국가법령정보센터, law.go.kr)
이 조문 하나만 보아도 회생절차가 '경영 종료 절차'가 아니라 '경영 정상화를 위한 법적 틀'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법이 설계한 회생절차의 본래 목적은 채무자를 처벌하거나 퇴출시키는 데 있지 않다. 이해관계인 사이의 법률관계를 조정해 사업을 계속 가치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법원은 '심판자'가 아니라 '틀을 제공하는 조정자'다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법원은 포괄적 금지명령과 보전처분을 통해 채권자들의 개별적인 강제집행을 막고, 회생계획안을 심사해 인가 여부를 결정하며, 절차 전반을 감독한다. 그러나 법원이 직접 "이 사업을 정리하고 저 사업을 키워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업을 유지하고 어떤 자산을 매각하며 조직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는 회생계획안을 통해 경영자(대표이사), 즉 실무상 관리인이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실제로 국내 회생절차는 2006년 채무자회생법 시행 이후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이른바 'DIP(Debtor In Possession)' 제도를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다. 출처: 정준영, "기업회생절차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법」 제18호, 2011, 사법발전재단
특별한 배제 사유가 없는 한 기존 대표자가 관리인이 되어 계속 경영을 맡는다는 뜻이다. 결국 법원은 절차의 공정성과 적법성을 담보하는 조정자이고, 회생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주체는 여전히 경영자다.
회생계획의 실질은 경영자의 사업재편 전략에서 나온다
회생계획안에는 채무 조정 방안뿐 아니라 향후 사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담겨야 한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할 것인지, 핵심사업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 유휴자산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할 것인지, 외부 투자자를 유치할 것인지는 법원이 정해주지 않는다. 채권자들은 이 청사진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해야 회생계획에 동의하고, 법원은 그 동의와 계속기업가치를 근거로 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회생계획 인가라는 법적 결과물은 경영자가 세운 경영전략의 설득력에 좌우된다. 법원 절차를 통과하는 것과 회생에 성공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경영자의 전략이다. 여기에 한가지 언급을 더 한다면 일부 회생기업의 관리인들은 법률대리인 사무실에서 해주는 것 아니냐 라고 하는 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건 경영자로써 기업의 운명을 변호사한테 맏기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식 밖의 얘기다.
최근 제도들은 법원과 경영자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서울회생법원이 도입한 여러 제도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은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보류한 상태에서 채무자와 채권자가 자율적으로 워크아웃이나 협약을 협의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2018년 7월 도입된 이후 다수의 사례에 활용되고 있다.
- pre-ARS는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기 전 단계에서부터 법원의 조정절차를 이용해 주요 채권자와 협상할 수 있도록 한 예방적 구조조정 제도다.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은 워크아웃과 회생절차를 결합해 두 절차의 장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 스토킹호스, P플랜, S-track는 인수 의향자와의 사전 계약, 신규자금 투입과 연계한 채무조정, 중소기업 맞춤형 절차 등 경영자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는 제도들이다 출처: 서울경제, "자율구조조정지원(ARS)·중기맞춤 회생절차(S-track) 활용해 보세요", 2020.11.15 / 법무법인 다래, 「서울회생법원 pre-ARS 및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도입」 뉴스레터
이들 제도의 공통점은 법원이 일방적으로 절차를 진행하는 대신, 경영자와 채권자가 협상 테이블에서 스스로 회생의 방향을 설계하도록 지원한다는 데 있다. 법원의 역할이 '결정'에서 '지원'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경영자가 반드시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전략적 의사결정들
법원 절차 안에서도 경영자가 직접 설계해야 하는 전략적 판단은 한둘이 아니다. 회생절차 신청 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가 / 회생계획안에 어떤 사업재편 방향을 담을 것인가 / 어떤 채권자와 어떤 방식으로 협상할 것인가 / M&A나 외부 투자 유치를 병행할 것인가 / 조직과 인력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이 중 어느 하나도 법원이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법원은 이 판단들이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지, 절차적으로 공정한지를 심사할 뿐이다. 전략의 내용을 채우는 책임은 언제나 경영자에게 있다.
법원의 틀 안에서 전략을 세우는 경영자가 회생에 성공한다
기업회생을 "법원과 법률대리인이 알아서 처리해주는 절차"로 여기는 경영자는 이 절차를 통과해도 회생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법원이 제공하는 법적 틀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사업재편과 채권자 협상, 자본 유치까지 스스로 설계하는 경영자는 같은 절차를 완전히 다른 결과로 만들어낸다.
결국 기업회생은 '법원의 절차인가, 경영자의 전략인가'라는 질문에 양자택일로 답할 수 없다. 법원은 회생이 공정하고 적법하게 이루어지도록 틀을 제공하고, 경영자는 그 틀 안에서 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전략을 채워 넣어야 한다. 이 둘이 맞물릴 때에만 진정한 의미의 기업회생이 완성된다. 필자는 앞으로도 기업구조조정과 기업회생, M&A 현장에서 경영자들이 법원의 절차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경영권을 법원에 빼앗기나요? 원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국내 회생절차는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DIP 제도를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어, 특별한 배제 사유가 없는 한 기존 대표자가 계속 경영을 맡는다. 다만 관리인은 법원의 감독을 받으며 주요 행위에 대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Q. 회생계획안은 누가 작성하나요? 실무상 관리인이 된 기존 경영자가 회계법인 등 조사위원의 계속기업가치·청산가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회생계획안을 작성한다. 법원은 이를 심사하고 채권자들의 동의 여부를 확인해 인가 여부를 결정할 뿐, 계획안의 구체적인 사업재편 내용을 직접 만들어주지 않는다.
Q. ARS나 pre-ARS를 이용하면 법원 절차를 아예 거치지 않아도 되나요? ARS는 회생신청을 전제로 개시 결정을 보류한 상태에서 자율협의를 진행하는 제도이고, pre-ARS는 아예 신청 이전 단계에서 법원의 조정절차를 이용하는 예방적 제도다. 두 제도 모두 협의가 성공하면 회생신청을 취하하거나 신청 자체를 피할 수 있지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식 회생절차로 이행될 수 있다.
[칼럼니스트 소개]
윤병운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 · 한국M&A컨설팅협회 사무총장
필자는 기업구조조정·기업회생·M&A 전문가로서 다수의 위기기업 회생 컨설팅과 M&A 자문을 수행해 왔다. 재무제표와 현금흐름 분석은 물론 사업경쟁력, 시장 변화, 고객·원가 구조까지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며, 기업회생을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과 기업가치의 문제'로 접근한다. 법원의 절차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경영자가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만드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며, '창업→성장→위기→회생→재도전→재성장'으로 이어지는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