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시 작가의 책 『본다는 것』의 프롤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려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본다는 건,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는 순간, 자신의 주관과 경험에 따라 받아들이므로 작가의 말처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본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인지요.
‘익숙한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제가 평생 탐구해 온 주제입니다.
디자인 전공으로 인생의 상당 부분을 ‘다르게 바라보고’ 표현하는데 집중한 이유도 있습니다.
또 몇 년 전 접한 교육프로그램에서 ‘나를 깊이 들여다보기’라는 낯선 경험을 한 일이 계기가 됐지요.
60여 년 동안 한 몸과 마음으로 살며, 그런 기회가 없었기에 당연히 잘 안다고 여긴 제 안의 낯섦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 자신도 그렇듯 잘 모르는데 다른 존재를 제대로 안다는 게 가능은 할까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나고 자라온 세상, 꿈이 다르고, 대학에 온 목적과 목표가 다릅니다.
한 강의실에서 수십 명이 같은 강의를 들어도 각자의 눈높이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으로 제자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참으로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 그 가치를 어느 때보다 깊이 고민하며 요즈음, 저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언러닝Unlearning'*에 자주 생각이 머물게 됩니다.
‘언러닝’은, 1919년 설립되었다 나치에 의해 1933년 폐교된 독일의 예술·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의 교육 철학 중 하나입니다.
기존의 고정관념, 전통적 관습, 타성 즉 예술의 엘리트적 접근을 의도적으로 잊거나 비워냄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하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모든 경로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교육 철학 근간에 둔 것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습관이나 무의식으로 의구심 없이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러니,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AI가 가져온 충격적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당연시되는 것에 대한 의심을 장착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서 중심을 잃고 떠밀려 갈 것입니다.
낯설게 바라보기가 다시금 중요해진 겁니다.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정해진 답이 없지만, 깊이 있는 시선으로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려 했습니다.
무심코 지나쳐 중요한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는 걸 저 역시 경험으로 알게 된 까닭이지요.
세상을 낯설게 보려면 우선 걸음의 속도를 늦추어야 합니다.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겼던 이유도, 주변의 풍경을 자세히 보려 함이었지요.
고정관념과 지식,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적인 노력,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의도’가 곧 의구심이 됩니다. 표상과 표의 너머의 기호를 읽고, 관계 안에서 생성되는 행간의 콘텍스트를 읽게 되는 거지요.
나아가 여백이 주는 상상력, 보이지 않는 ‘무’가 아닌 그 너머를 그릴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종종 주변에 있는 사물을 관찰하고 이전에 사용하던 표현이 아닌 낯선 서술을 시도하게 합니다. 반드시 생경한 방법으로 표현하되 문법 파괴도 허용됩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건 읽히는 문장이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학생들을 생각하게, 주저하게 한다는 겁니다. 얼마든지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경험하도록 돕는 게 이 작업의 핵심입니다.
놀랍게도 10분간의 짧은 관찰과 단 10문장의 글쓰기로 ‘노란 책이 우울하다’라거나 ‘칠판은 너와 나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와 같은 멋진 문장이 탄생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낯선 시선’에 놀라워하고, 친구들의 반짝이는 표현도 감상하며,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은 담아 갈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강의실을 나서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흥미로움이 빛처럼 번지는 그때, 저는 그들에게서 미래를 봅니다.
‘낯선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는 이처럼 ‘두려운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개별성과 고유함을 지킬 마중물이 됩니다.
제대로 ‘본다는 것’은 한 존재를 ‘온전히 존재하게 하는 중한 일’임을 음각으로 새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는 학생들과 흥미진진한 낯섦의 여행을 종종 떠납니다.
K People Focus 김윤경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학사, 석사, 박사
| 미국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디자인교육학 석사
| 포토 에세이북 『두 개의 시선』
| 출간 [가르친다는 건 곧 사랑한다는 것] / 에피쿠로스의정원
|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30년 재직, 2026년 8월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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